삶의 단상-강근숙
일상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인간으로서 보여지는 삶의 단면을 보여 주고 싶다.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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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고 두드린 번호판 뒤에서
들려오는 안내 멘트
도시의 뒷골목에는
무서운 가난이 숨어있다
날 바뀌고 달 기울면
끈질긴 추적자 바싹 따라붙어
발목을 잡는 사슬
위급한 상황 꼬리 끊고 달아나는 도마뱀-
지금 나는,
한 마리 파충류 되어
꼬리 뚝 잘라내고
숫자 없는 세상으로 달아나고 싶다
기대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문산에서 도라산 오가는 열차 문에
나란히 서 있는 글씨
아무리 봐도 내겐,
기대하지 마시오
기대하지 마시오 한다
내 고단할 때 기대어 쉬고 싶은
나무 한 그루 없어도
내일을 붙잡고 기대하며 살았다
기대하다 잃어버린 그 많은 소망들
기대하지 마시오, 기대하지 마시오 한다
기대면 기댈수록 혼자 서지 못하고
기대하면 할수록 돌아오는 낯 뜨거움
달려가는 세월이,
기대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꼿꼿이 가라 한다
봄날
묶인 발 풀고 나온
연하디연한 몸짓
연초록 사연을 흩는다
흙내음 그득한 뜰에
더운 입김으로 돋아난
목숨
숨겨둔 말들 안으로만 삭히며
모진 세월 속에
더 푸르른 소망 하나
파릇한 새싹 틔울 때까지
얼마나 많이 아파했는지
지난겨울 설한풍에
죽은 듯이 숨죽이며
마디마디 저린 이야기를
당신은 알까
가슴으로 살자
시끄러운 세상
보고 듣고 싶지 않아
머리 떼어 버리고
천년 세월 가슴으로 사는
목 없는 부처님
말로선 다할 수 없는 사연
깊은 정적 묻어놓고
가지산 자락 좌대 삼아
무겁게 눌러앉은 마음
보고 듣고 말하면서
무명 속에 지은 죄,
다시 죄지을 것 같은
머리 떼어 징검다리 놓고
가슴으로
가슴으로 살자
살촉에게 묻다
비 개인 가을 날
영집 궁시박물관 뜨락에
아득한 시대에서 말 달려온 궁사들
주몽의 후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녁을 향해 살을 먹인다
줌손은 태산을 밀치듯이 강하게 밀어내고
각지 손은 범의 꼬리를 놓지 않으려는 듯
화살을 먹여 쥔 양손을 들어 올린다
손을 풀어 보내야 하는 순간
짧은 입맞춤하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살-
후회 없는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사랑하는가
미련 없이 떠나보낸
궁사의 가슴
거리에 앉은 남자
사람들이 길 비켜주는
숭례문 앞 삼성프라자 건물 아래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웠듯 앉아 있다
언제나 그 자리, 북데기 단 같은 모습
싱싱한 삶의 바다에서 밀려 나온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빙빙 돌아가는 네거리에서 도인처럼
누더기 걸치고 앉아 길을 찾는 일이다
동전 한 닢 던지는 이 없는 차가운 거리
아무리 둘러봐도 빈 손바닥
한때는 빌딩 숲 어느 뼈대였을 그 남자
파카 잠바 누비바지 겹겹이 껴입고도
등이 시린 세상
복달임하는 염천 대낮
거리에 앉은 남자는 춥다
춥기만하다
물 속에 꽃
저문 하루
벽초지 수목원
연산홍이 활활 타고 있다
그 누구의 열화인가
저리 타는 불사름
파문 없는 호수
세월 비켜선 바위, 그 아래
찔레 순 꺾어 목축이다
타는 갈증
물속에 던진 사랑
호수에 번진 꽃물
술 속에 꽃
질척이는 오후
손금 따라 걷다가, 길 위에서
맨몸으로 만난 그대
솔직하고 입 무겁고 속 넓은 그대와
눈 맞아 정분났네
변함없는 열정
십수 년 몸을 섞어
중독된 사랑
차마,
버리지 못한 꿈 한 조각 끌어안고
독한 사랑에 빠진
붉은 꽃 한 송이
줄 위에 서다
다른 길은 없다
잡을 것 하나 없는 외줄 위에 올라서서
중심을 잡느라 숨 고르는 남사당
앞은 구만리 발아래 아찔하다
어차피 가야하는
인생은 외줄타기
하늘 끝 그리움 세워놓고
굿거리장단 쿵-덕, 줄 위에 얹어
새 처 럼 팔 을 펼 친 다
한 손에 부채 들고 또 한 손엔 허공 잡고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등줄기 흐르는 식은땀
뉘라서 알리
수없이 떨어져 멍들고 깨진 상처
아픔도 익숙해진 흔들리는 바람 속
오늘도 외줄타기
앞만 보고 간다
중심을 잡느라 숨 고르는 남사당
앞은 구만리 발아래 아찔하다
어차피 가야하는
인생은 외줄타기
하늘 끝 그리움 세워놓고
굿거리장단 쿵-덕, 줄 위에 얹어
새 처 럼 팔 을 펼 친 다
한 손에 부채 들고 또 한 손엔 허공 잡고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등줄기 흐르는 식은땀
뉘라서 알리
수없이 떨어져 멍들고 깨진 상처
아픔도 익숙해진 흔들리는 바람 속
오늘도 외줄타기
앞만 보고 간다
요란한 봄날
-강근숙 -
시린 땅 뚫고 나와
햇살에 앉은 연둣빛 꼬맹이들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흐드러진 사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명의 계절
삽시간에 먹장구름 몰려와
우박 뿌리고
눈보라 휘몰아친다
118년 만의 이상 기후
땅 꺼지고, 파도가 일어설 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고
명당 찾아 둥지 튼 번쩍이는 금배지
너도나도 용상은 내 자리라고--
목청 높이는 야·단·법·석
여의도 벚꽃이 배를 잡고 웃는다
우리들의 봄날
강근숙
아까시 꽃송이 주렁주렁
꿀벌들 꽃을 찾는 5월
코끝 간질이는 그 향기 그리워
금파보 *바람 둥지
길벗 하나둘 모여든다
손에 손에 들고 온
김밥에 열무김치, 파전 삼겹살
텃밭에 풋풋한 상추 부추
곰삭은 김장김치 곁들이니
나라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
소주 맥주 두견주-
이백 두보 둘러앉아 술잔 주고받는 사이
석양은 임진강에 빠져 가뭇없다
저것 봐라, 저것 봐 인생 그거 잠깐이다
틀린 적 한번 없는 국麴선생 가르침
타다남은 장작불에
소라 가리비 올려놓고 장진주사 읊조릴 때
무논에 개구리 울어댄다
지난해도 올해도 사랑한다고
목청 높이는 한밤의 세레나데
가득 찬 봄날
강근숙
덕은리 뒷산, 고인돌 산책길
초록 물결 출렁이는 언덕배기는
옛사람 옹기종기 모여 살던 달동네
밀고 당겨서 세운
탁자형 고인돌
빗살무늬토기 반달돌칼 돌화살촉
불 피워 음식 익히던 화덕자리
선사인들 집터에 마주 앉아
거섶 잔뜩 넣은 비빔밥 먹는다
촛대바위
수- 수억 년 전,
어느 늙은 장인이 빚어놓은
해파랑길 추암 기암괴석 사이
하늘 향한 외로운 뼈대 하나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홀로 타는 등불
파도가 백만 번 부딪혀
부서지고 또 부서져 모래 될지라도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눈물의 짠맛 홀로 삼키며
기어코 세상을 밝히려는 눈부신 약속
동해를 열고 솟아오른 뜨거운 불씨
고독한 촛대바위 정수리에 내려앉아
어두운 세상 구석구석 밝히는 빛의 축제
모진 바람 견딘 동해의 푸른 심장
그대는
어떤 해일도 넘볼 수 없는 찬란한 불덩이
겨울꽃
삭풍 휘몰아쳐
풀잎 스러진
얼어붙은 세상
꿈을 품은 민들레
잎 버리고 납작 엎드려
뿌리 깊게 내렸다
고난은 삶을 단련하는 과정-
차가운 땅 위에 반짝이는
노란 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