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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회-1971년 졸업

학사 기록

신산초교 41회는 1965년3월에 1학년으로 입학하여  1970년에 6학년으로 1971년 2월에 졸업했다.  전체 입학생은 00명이고 졸업생은 000명이다.

졸업 사진

6-1반

6-2반

6-3반

6-4

추억의 글 

나에게 신산이란?

6-3, 안재형

image.png국민학교 졸업 전에 약 1년간 축구 선수 생활을 하였다. 어느날 축구부 김선정 선생님께서 축구공을 주며 차보라고 하셔서 냅다 질렀는데 공이 떠서 좀 날아갔나 보다. 그리고 졸지에 학교 대표 축구선수가 된 것이다.

당시 김선정 선생님께서는 저학년 담임을 맡으셨는데 학부모들이 자녀를 선생님 반으로 넣고 싶어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키가 작으셨음에도 축구를 잘 하셨었고 엄격하게 지도하셔서 좀 무섭기도 하였지만 졸업할 때까지 잘 견뎌낸 듯 하다.

 선생님 연락처는 스마트폰 주소록에 잘 보관되어 있으며, 몇 년 전 전화통화에서 아직 축구를 하시는데 공격 보다는 센터백을 맡는다고 하셨다. 그 어린 시절 금촌에서 있었던 파주 대회에서 승부차기(난 3번째) 끝에 우승으로 돼지를 선물로 받은 것이 제일 기억에 남고, 한 번은 문산국민학교 키 큰 선수의 왼발 슛을 막아내지 못해 아쉬움을 삼키기도 했었다.

 축구를 처음에는 작은 운동장에서, 나중에는 큰 운동장에서 하였는데 축구장 두 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여름방학 중에는 서울에서 전지 훈련을 와서 같이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 때 서울 선수들은 덩치도 크고 콧대가 셌는데, 우리 신산 친구들은 끈질기게 맞서 경기를 대등하게 했었다. 친구 석순이는 골아웃이 될 뻔한 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킥을 하여 골을 만들어 낸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신산 국민학교에서의 축구생활은 나에게 인생의 주춧돌이라 여겨진다. 특출나지도 않았고 사교성이 없었던 내가 대학생활을 원만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축구 때문이었다.

축구 동아리에서의 맹활약은 친구 및 선후배들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 주었고,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지만 서울시 의과대학 축구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한 것은 대학생활을 잘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이다.

 그 후 군대와 병원에서도 축구는 내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축구를 찐하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여러 축구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도 들어 봤고, 개인상도 더러 받아보았다. 외국 여행은 한국을 대표하여 세계의사축구대회에 참석하는 축구투어로 하기도 하였다.

나이가 들어 무릅에 이상이 생겨 축구를 중단하였지만, 어렸을 적에 신산 국민학교에서 축구를 같이 한 친구들과 아직도 정기적으로 만나 소주를 기울이고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90%는 건강에 좌우된다고 하였는데, 축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찌 있으랴. 축구와 함께 한 반백년이 넘는 인생길이다.

 어느날 한글 호를 만들고 싶었는데, 新山국민학교 그리고 廣灘중학교에서 한자씩 그 뜻을 차용하여 뫼여울이라 지었다. 인생 후반부에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신산, 너에게 참 많은 빚을 지었네 그려. 고맙고 사랑한다.

고맙고, 그리운 그 시절

6-4, 홍종숙

image.png

내가 졸업한 신산초등학교가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41회 졸업생이니 내 나이도 고희를 바라본다. 수없이 많은 세월을 흘려보낸 작금에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끄집어 내려니 6년의 긴시간 동안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아련하기만 하다. 

기나긴 세월이 지나 들쳐 본 사진첩 속의 어린 내가 머리를 질끈 묶고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천진스레 웃고있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두근두근 입학식, 만국기 휘날리는 운동회, 소령원으로의 소풍, 보광사 수학여행, 졸업식이 있기까지 수많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 기억 속에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3학년 담임선생님이 군입대로 떠나시던 날, 난 무엇이 그리도 서러워 펑펑 울었던지 아직도 생생하다. 6학년이 되어서는 시험이 끝나면 내 차지가 되었던 채점. 담임선생님의 믿음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신바람나게 열심이었던지…

훗날 내가 교직에 있울 때 그때의 채점심부름이 밑거름이 되어 채점은 정말이지 끝내주게 잘 했던 것 같다. 과거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함께한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무척이나 고맙고 그립다. 오랫만에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며 모교의 100년을 축하하고 찬란하게 빛나기를 기원한다.

동창회 운영

41회 동창회는 2000년도에 결성되고 초대회장은 000가 맡았다.  초대 회장 이후 000,000,000,000 등이 역임했다.

2024년도 회장은 000으로 현재 회원으로 00명이 운영되고 있다.

2012년 동문체육대회 주관

2012년10월7일(월요일) 개최된 제29회 동문체육대회를  41회 동창회에서 주관했다. 슬로건은 "함께 있어 행복한 신상동문'으로 개회식은 오전 11시에 개최되고 오후4시까지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기마전, 축구, 족구, 배구 노래자랑, 명랑운동회를 가졌고 전체  2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당시 심춘섭 41회 동창회장이 주관하고  이기상 동창이 사무국장을 담당했다.

    

 

동창회장의 말

6-0반 이원근

안녕하세요, 신산초등학교 41회 동창회장입니다.

신산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뜻깊은 순간에 '신산초교 100년사' 책자를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50여 년 전, 우리는 순수한 어린아이로 이 학교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기억, 친구들과 함께한 웃음과 눈물, 그리고 선생님들의 따뜻한 가르침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나누며 웃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함께한 시간들이 주는 위로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동창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따뜻한 마음의 쉼터가 되었고,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흔의 나이를 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의 외모는 변했지만, 마음속에 간직한 신산초등학교의 추억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소중함과 친구들의 가치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신산초등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산초교 100년사'는 우리 학교의 역사를 담아내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이 책자를 통해 지난 100년 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우리는 또 다른 100년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주신 선생님들과 동문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신산초등학교가 더 많은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배움의 전당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신산초교 100년사'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더욱 깊게 해주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졸업후 우리들

2010.4.15일 동창회 단체 사진

2011.6.25 동창회 (1박2일 남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