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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귀한 식량, 콩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장 담그는 일을 중요한 연례행사로 여겼다. 장은 일 년 양식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반찬이다. 김장을 끝내고 동짓달이면 시골에는 집집마다 햇콩으로 메주를 쑨다. 콩을 씻어 불린 후 가마솥에 넣고 장작을 지피면, 점점 불어나 한 가마솥이 된다. 콩이 뭉그러질 때까지 삶아 절구질을 해서 벽돌 모양으로 메주를 만든다. 어른들은 못생긴 아이를 장난삼아 '메주댕이 같다'며 놀리기도 하는데, 시골 아낙들이 아무렇게나 치대서 뭉친 메주가 틀에 찍어낸 듯 모양이 똑 고르고 이뻤다.

볏짚 위에서 말려 꾸덕해지면 짚으로 하나씩 엮어서 아랫목에 기둥을 세우고 매달았다. 날이 갈수록 쿰쿰한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고 메주에는 하얀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메주에 작용하는 대표적인 박테리아는 주로 푸른곰팡이, 황누룩곰팡이(아스퍼질러스 오리재), 검은곰팡이(아스퍼질러스 나이거) 등이 있다. 메주를 볏짚 위에 보관하거나 새끼줄을 꼬아 매달아 놓는 것은 장을 만드는 미생물 발효를 촉진하고 된장의 맛을 내는 균이 볏짚에서 배양되기 때문이다.

여인네들은 음력 정월, 자연의 운행에 맞춰 길일을 택해 장을 담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과 질 좋은 소금, 숨 쉬는 옹기그릇이 만나 이뤄 낸 발효 과학의 결정체가 된장과 간장이다. 농경문화가 정착하면서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 콩에 없던 영양소가 생긴다는 것을 터득한 조상들은 자연스럽게 짚의 미생물을 이용했다.

콩은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 열매를 맺는다. 종가인 우리 집은 큰일이 많아 콩을 많이 심었다. 해마다 두세 가마니씩은 수확했고, 장독대에는 기본으로 묵은 간장 독과 고추장, 된장 항아리가 즐비했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액운이 낀다는 말이 있듯이 장독대를 신성하게 여겼고, 흰 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장독을 윤이 나게 닦고 뚜껑을 열어 햇볕을 쬐었다. 밥상에는 된장국, 청국장, 비지찌개, 콩자반이 번갈아 올라왔고, 특별한 날에는 콩을 한 말씩 불려 맷돌에 갈아 두부를 만들었다. 집에서 만든 두부를 먹고 자란 사람은 가마솥에 간수를 넣어 금방 엉긴 뜨끈뜨끈한 순두부와 두툼하게 썰어서 김치를 걸쳐 먹는 두부 맛을 잊지 못한다.

파주에는 45년간 콩 농사를 지으며 콩 연구에 몸 바친 이혁근 명인이 계시다. 농촌진흥청에서 현장 명예연구원으로 위촉받은 그는 경기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콩 재배 농가에 기술 지도를 담당했고, 일반화되지 않은 신품종 종자의 특성을 찾아내어 실험 끝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재배기술에 도달했다. 수확량도 많고 병충해에도 강한 신품종 재배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콩은 친환경적이라 안전하고 단백질도 수입 콩과 비교할 수 없다. 아직은 자급률이 37%밖에 되지 않아 수입 콩에 의지하지만, 콩을 더 많이 심어야 한다며 이혁근 콩박사는 우리 콩의 월등한 품질을 강조한다.

장단콩 고장답게 파주에는 손수 장은 담그고,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여러 군데다. 통일촌에는 오랫동안 옛날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드는 안만례 장인이 있다. 장단콩을 가마솥에 삶아서 메주를 만들고, 방에 볏짚을 깔아 하얀 곰팡이가 피도록 띄운다. 장을 담글 때는 십수 년 묵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부정한 것을 몰아내는 숯과 붉은 고추를 넣는다. 노련한 솜씨에 정성을 더하면 장맛이 다르다. 요즘은 시골에도 가족이 많지 않아 장을 담지 않고 사 먹는 집이 많아졌다. 그래선지 장단콩 축제나 재래식으로 담은 된장, 간장은 물론 고추장, 청국장이 가장 먼저 동이 난다.

파주시 <장단콩웰빙마루>에서는 봄이면 장독 분양을 한다. 2천여 개의 장독은 메주 한 말씩 장을 담그고 각자 이름표를 달았다. 막내 올케가 재래식 된장이 먹고 싶다고 메주 한 말을 장독 분양했다. 오늘은 햇살과 바람 속에서 익힌 장을 가져가는 날이다. 따로 담아 놓은 간장을 찍어 먹어보니 감칠맛이 났다. 곰삭은 된장도 입맛이 당긴다. 전화로 신청하고 열 달 만에 와서 장을 가져가려니 깊은 맛을 거저 얻은 듯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장독 분양을 한 사람들은 양평, 용인 등 먼데서 온 이들이 많은데, 이는 공장에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장을 만든다 해도, 장독대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미생물과 자연이 빚어낸 장맛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긴 세월 콩과 함께 살아왔다.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콩에는 한민족의 혼과 역사가 담겨 있다. 두만강이란 글자를 풀어 보면 콩두, 가득할 만으로 콩을 실은 배가 강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만주에 거대한 콩밭이 있었고, 이 콩 가마니를 나르는 배들이 두만강에 가득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만강 인근 지역인 북한의 회령 오동 고조선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1,300년경의 청동기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이 나왔다. 동북아시아에서 동이족은 콩을 처음 식용으로 사용했고, 충분한 단백질 공급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동양인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고 지능적으로 우수했다.

쌀에 단백질이 8%가 들어있다면 콩에는 단백질이 40%, 지방이 20%, 탄수화물이 30%가 함유되어 있다. 쌀의 아미노산과 콩의 아미노산이 만나면 고기에 버금가는 단백질을 만든다니 완전식품 아닌가. 그 옛날 고기를 적게 먹어도 콩으로 충분히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기에 노동력이 많았던 일꾼들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었다. 콩은 곡식이라기보다 영양 성분으로는 밭에서 나는 고기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콩 수출국인 미국은 일찌감치 콩의 중요성을 깨닫고 70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수천 종 이상의 재래종 콩과 야생 콩을 수집해 연구했다. 미국 농무성이 보관하고 있는 콩, 콩과 작물, 야생 콩 종자 대부분은 1970년에 한국 정부의 콩 종자 유출이 관대할 때 가져온 것으로 '한국산 품종은 미국의 대두 산업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콩 원정대가 약 9,000여 점의 자원을 확보했고 그중 콩에 대한 것이 4,578점이었는데, 한국이 3,379점, 일본 577점, 만주 511점, 중국 111점이었다. 이들이 다른 곳에 체류한 기간은 약 2년, 한국에 머문 것은 고작 5주였는데 수집한 콩이 가장 많은 것은, 마을마다 열리는 장터에서 다양한 콩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 임진각 마당에서는 11월 하순이면 3일간 <파주 장단콩 축제>가 열린다. 문산으로 향하는 전철은 장단콩 축제에 가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철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탄 것은 처음 본다. 두세 시간씩 차를 타고 왔다는 이들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으며, 장단콩은 맛이 다르다" 하였다. 장단콩 축제 마당에는 칸막이마다 노란콩, 검은콩, 파란콩, 밤콩, 쥐눈이콩 등 종류도 다양했다.

청정지역 파주에서 나는 장단콩은 알이 굵고 단백질, 칼슘, 지방, 철분 등이 월등하게 많이 들어있으며, 쌀과 인삼과 함께 장단삼백이라 불리며 수라상에 올랐다. 장마당에는 콩과 장류 말고도 시골에서 나온 갖가지 농작물이 많았고, 꼬마 메주 만들기, 콩 털기 체험과 볼거리, 먹거리가 어우러진 마당은 활기가 넘쳤다. 콩으로 만든 초콜릿, 콩고기, 콩 막걸리, 화장품, 샴푸 등을 선보여 콩의 활용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의 장 수출이 날개를 달았다. 2002년 한식 세계화 사업 이후 장류 수출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간장, 된장, 고추장 수출은 두 배 커졌고, 이 중 고추장은 네 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교민 위주 시장에서 매운맛 열풍이 불면서 현지인 시장으로도 수요가 확대됐다. 고기에 쌈을 싸 먹을 때만 먹는 우리와는 달리, 외국에서는 햄버거나 핫도그에도 쌈장을 발라먹는다. 세계인이 드디어 깊은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발효 식품을 찾는 시대가 되었다.

장이 없는 우리의 밥상은 상상할 수 없다. 콩은 고단백질, 높은 식이섬유를 가진 저속노화의 핵심 식재료 중 하나다. 콩의 종주국답게 오래전부터 콩을 이용한 음식을 먹어온 우리 민족은 뼈대 있고 강단지다. 콩을 띄워 장을 담가놓고, 수개월을 인내하며 맛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는 장독문화, 장이 살아 숨 쉬는 발효 과정에서 생겨나는 유산균과 강력한 항산화 항암 성분은 우리의 건강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은 단순한 밑반찬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 있다. 장담그기 문화는 그 독창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2024년)되었다. 우리의 장은 한국을 넘어 인류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