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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요충지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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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포 둥댜 해변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였다. 바닷가는 태풍과 국지성 호우로 날을 잡아놓고도 못 가는 것이 흔한 일이며, 섬에서 하루 이틀 발이 묶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멀쩡하던 날이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달구비가 쏟아진다. 너울이 심해 여기저기서 배멀미를 호소하는 승객이 늘어났다. 한동안 불안해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개었다. 갑판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객선이 군사 작전구역을 지나기 때문에 선상에서 사진 촬영이 엄격히 제한되며, 서해는 파도가 심해 안전 예방 차원에서 갑판 개방을 금한다고 하였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나는 창가에 앉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검푸른 바다를 곁눈질했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뱃길 228킬로를 달려 백령도에 도착했다. 쾌속정이 없던 예전에는 10시간 이상이 걸렸다는데, 현대를 사는 우리는 4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가자마자 점심을 먹고 여객선으로 서북쪽 두무진을 한 바퀴 돌았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 해안 형제 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기묘한 암석들이 장관이다. 10억 년 전 모래가 열과 압력으로 퇴적암인 사암이 되었다가, 더 깊은 지하에서 고온 고압에 의하여 변성암인 규암으로 변한 이 암석은, 외부의 침임을 막는 중요한 방어지점에 있어 천연 요새 역할을 한다.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두무진頭武津, 이름처럼 위풍당당하게 바다를 향해 늘어선 기암절벽은 신의 작품인 듯 경이로웠다.

심청각에 올라 인당수는 어디쯤일까 가늠해본다. 천하의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는 풍랑이 가장 센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해역이다.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북한의 장산곶은 백령도에서 17킬로 떨어진 곳이다. 백령도는 서해 5도 중 가장 큰 섬으로, 바다의 휴전선인 NLL 최북단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1999년 연평도 해안에서 반복적으로 충돌이 벌어졌고, 20103,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의 어뢰 수중 공격으로 천안함 46용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군은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전력을 증강하고 대잠수함 감시 장비와 대포병레이더 등을 대폭 강화하여, 인근 해역을 순찰하며 NLL을 수호한다. 백령도는 민간인은 5천여 명, 군 병력도 5천 명으로 이중 다수는 해병대원이다. 백령도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소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 어쩌다 시내에 나간 남자들은 소주를 실컷 마시고 만취한 채 돌아왔다는데, 세월이 변한 지금 백령도에는 군인이 좋아하는 빵집과 치킨집이 유독 많이 보인다.

 천연비행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운 모래를 고르게 펼쳐놓은 듯한 사곶해변은 특수한 지질 지형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되었다. 길이 2킬로, 200미터의 모래 해변은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과 함께 세계적으로 단 두 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이다. 육안으로는 평범한 모래처럼 보이지만, 입자가 작고 고르기 때문에 단단한 모래층이 형성되고, 미세한 가루가 두껍게 쌓여 물이 빠지면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비행장으로 활용되었고 차량 통행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사람만이 해변을 걸을 수 있다. 신비로운 사곶해변을 걸어보았다. 발바닥에 닫는 촉감은 부드럽지만, 그 아래 단단한 바닥이 느껴져 천연비행장으로 활용했다는 것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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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동 해앗 사구

 콩돌해안은 사곶해변 멀지 않은 곳이다. 모래 해변 가까운 곳에 전혀 다른 콩돌해안이 자리한다는 것은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지질공원 해설사는 콩돌해안 설명을 하며 맨발로 걸어보라고 한다. 운동화를 벗었다. 돌의 크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하나같이 동그랗다. 얼마나 오랜 세월 구르고 부대끼며 이리도 동글동글 콩돌이 되었을까. 돌 사이에 파묻힌 발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고, 발바닥이 간지러워 해변에서는 웃음꽃이 핀다. 해변의 규암이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부서진 후, 파도와 태풍이 그 조각들을 굴리고 굴려서 둥글게 변했다는 콩돌해변은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되었다. 모난 돌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모난 돌이 없어 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해변을 자유롭게 걷는다. 해변의 오색 콩돌은 그냥 돌이 아니라, 오랜 세월 파도에 구르고 깎이며 인내로 빚어진 자연의 보석이다. 해변에서 즐겁게 노는 사이, 지질 해설사가 일행의 이름을 수놓았다. 콩돌로 수놓은 박온화, 황영자 이름이 너무 예뻐 내 이름도 써 줘요생떼를 쓰며 한바탕 웃었다.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농여해변, 우뚝 솟은 암석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고목의 나이테를 닮은 독특한 무늬가 암석에 새겨져 있는데, 암석은 얇은 지층이 다양한 색으로 반복되어 고목의 나이테처럼 보인다. 이 암석은 지층이 강한 변형 작용을 받아서 수직으로 선 후, 풍화와 침식으로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 웅장하고 빼어난 해상 경관 속, 10억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이테 무늬는 백사장 주변 절벽 표면에도 나타난다. 상상조차 어려운 태고의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나이테 바위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저마다 셔터를 누른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드나드는 풀등이라는 모래톱이 이색적인 농여해변, 천지개벽 이전 시대는 무엇이 살았을까 상상하며 해변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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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이런 사막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바닷가의 모래가 강한 바람으로 날아와 모래언덕을 만들었는데, 모래사막 구간은 2킬로 미터로 꽤 넓었다. 모래가 많이 날리는 이 해변을 과거 사탄동沙灘洞이라 불렀으나, 어감이 나쁘다는 주민 의견을 방영해 모래울로 개명되었다. 예전에는 축구장 60개 규모였고, 바다에서 몰려드는 모래가 옥죽동 뿐 아니라 산 넘어까지 밀려들 정도로 강렬했다. 모래바람을 막으려 해안 사구에 소나무를 심은 후, 사막 같은 모래 언덕과 소나무 숲길이 공존하는 이색 명소가 되었다. 중앙에는 낙타 모형을 세워놓아 정말 사막에 온 느낌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경험하듯 뜨거운 해안 사구를 걷다가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과 솔향이 상쾌해 마냥 걷고 싶었다.

 셋째 날은 소청도를 들러 가야하기에 어뚝새벽에 일어났다. 해무에 쌓인 마을이 신비롭다. 해산물이 가득한 아침을 먹으며 풍경이 아름답다고 너스레를 떠는 나를 보고 식당 주인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안개를 좋아하지 않느냐는 말에 배가 못 뜹니다한다. 이곳 식당 주인들은 그날그날 손수 해물을 따고 고기를 잡아 음식을 만드는데, 배가 못 뜨면 재료가 떨어져 장사를 못 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제 생각만 하기 마련이다. 신선한 해산물을 맛있게 먹으면서 현지인의 고충은 헤아리지 못한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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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도 고깃배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작은 섬, 소청도 여객터미널에 짐을 맡겨 놓고 분바위를 보러갔다. 고개를 넘어가는 마을 언덕에는 교회와 성당이 있고, 가장 높은 곳에 김대건 신부 상을 세워놓았다. 소청도 예동 포구는 소규모 어선들이 드나드는 포구로, 연근해에서 꽃게, 조기, 삼치, 민어 등이 많이 잡힌다. 소청도는 백령도, 대청도 보다 어획량이 많아 쓰고 남는다는 유행어가 있듯이 지금은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 길섶에 세워진 소청도 추모비를 읽어보니 해방 이후, 섬마을에는 엄청난 아픔이 있었다.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폭발물을 해체하여 연료를 쓰려다가 기뢰가 폭파하여 6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연이다. 80년 전, 천지를 뒤흔든 폭발음과 참상을 어찌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가난 때문에 동네 사람이 떼죽음을 당한 희생자 가족이 겪었을 비통함이 전해져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 분바위를 보러 가는 길, 분바위일까 궁금했다. 지질 해설사는 백색 대리암으로 이루어진 분바위(천연기념물 508)는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얗게 보여서 분粉바위라 설명한다. 이곳에는 지구 생성 초기에 출연한 남조류(시아노 박테리아)의 일종인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 초기에 산소를 생성해 생명 탄생에 기여한 원시 생물로, 생명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화석이다. 따뜻한 바다에 번식한 산호 같은 생물들이 쌓여 만들어진 석회암이 고온 고압의 변성 작용으로 인해 대리암이 만들어진다. 조개껍데기 같은 패각 생물체의 유해로 만들어지는 것과 무기적으로 만들어진 것, 두 가지는 다 칼슘 성분이 주성분으로 시멘트의 주요 원료이다. 소청도 주민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들어있는 암석이 굴 껍데기처럼 생겨서 굴딱지 암석이라 하며, 달빛 비추는 밤, 소청도를 하얀 띠로 둘러싸인 듯 보여 월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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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바위

 분바위를 관람한 우리는 나뉘어 소청 등대로 가고, 나머지는 대리석 광산으로 향했다. 지질공원 해설사는 우리와 동행하여 설명을 자세히 해준다. 이곳은 8억 년 전, 지구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지질 명소로, 해저에서 퇴적된 석회암이 지각변동으로 열과 압력을 받아 대리석으로 변하였다. 일제강점기 마을에서 가깝고 운송이 편한 곳 대리석은 집중적으로 채굴했고, 깊은 골짜기만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실제로 대리석을 채굴해 건축자재, 조각 재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채석이 중단돼 그 흔적만 남아있다. 하얀 돌이 부서져 뒹구는 채석장에는 조개껍데기 같은 바위와 기왓장처럼 얇고 단단한 돌이 차곡차곡 쌓였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대리석 광산 네 곳 중 하나로 알려진 이곳 소청도 광산은 단순한 채석장이 아니라 퇴적암이 변성암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질 유산의 현장이다.

 천천히 온 길을 돌아 식당으로 왔으나, 소청 등대로 간 사람들은 도착하지 않아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었다. 좁은 식당에 손님이 계속 들어왔고, 더 머무를 수 없어 밖으로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찻집도 쉼터도 편의점도 없었다. 우체국이 보여 잠깐만 쉬다 가겠노라 양해를 구하고 앉아 쉬는데, 조금 후에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는다 하여 다시 나왔다. 소청도는 면적도 인구도 적지만, 택시도 버스도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 땀을 흘리며 오던 길을 되짚어 걷던 중, 운 좋게 지나가는 민박집 자가용을 얻어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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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광산, 바다 건너  산 꼭대기에 소형 등대가 보인다

짧은 3일 동안 서해 최북단 섬을 돌아보았다. 사방을 돌아봐도 아득한 바다, 멀리 해역을 지키는 해군 함정이 보이며 북한 땅도 아스라이 눈에 들어왔다. 대청도 남서쪽 NLL 해역에는 중국 불법 어선이 수시로 침범하지만, 해양경찰청과 해양수산부가 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 10억 년의 역사를 품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는 한반도 지질 교과서라 불릴 만큼 암석의 형태와 천연기념물이 다양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남북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전략적 요충지, 사시사철 세찬 파도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생명의 땅, 청정한 바다가 품은 작은 섬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보물섬이다.

백령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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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포 등대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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