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 열차
2월 25일은 결혼한 지 46주년이 되는 날이다. 계산해 보니 552개월, 16,800일이다. 숫자로 늘여 놓으면서 엄청난 세월이 흘렀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아내에게 식사라도 한 번 하는 게 어떤지 물었다. “우리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 됐지 뭘 해요.”하며 그냥 흘리는 말처럼 대꾸한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평소 감사함을 알고 사는지 부끄럽기 까지 했다.
신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다고만 말을 해왔지 그 외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건강에 더 나아가 행복에 근본적인 건 심적 건강이 아닌가 얼핏 뇌리를 스친다. 아내가 말한 것과 같이 스스로 만족감을 넘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하다.
나는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기도하는 게 있다.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새롭고 건강한 하루를 값지게 쓰겠나이다.”라고 입으로만 기도했지 아내처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감사의 마음은 느끼지 못했다. 가물에 콩 나듯 느낄 때도 있었지만 어느 틈엔가 습관적으로만 하는 기도에 불과한 기도가 돼버리고 말았다.
하루 전날 그러니까 2월 24일 “며칠 전 미리 양해를 구한 것처럼 결혼기념일 당일은 아산에 가야할 일이 있으니 오늘 드라이브라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다시 제안 했더니 또 부정적으로 응답한다. 먼저 한 말이 진심이었던 것 같다. 결혼기념일로 조촐한 여행계획이라도 세워 제안했어야 했나 하는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두 번씩이나 제안했으니 못이기는 척하고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하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는 수없이 내 제안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보하’라는 신조어가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말이란다.
아내는 그런 삶의 소중함을 깨우친 것인지. 코로나19 때 ‘일상’이라는 말이 유행하여 별일 없이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가를 일깨운 것처럼. 하지만 내일은 ‘아보하’라는 일상에 ‘유별난’이라는 분장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우겨봤지만 별무신통이다. 앞에서 계산해 본 것처럼 그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몇 가지 역경도 있었지만 아내가 말한 대로 지금까지 살아있음에 감사하지 않은가. 달포 전 나이도 한참 아래인 동생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내의 심기가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당시 ‘살아있음’이라는 말을 꺼낸 걸로 봐서 그와 연관이 있는 걸로 여겨진다. 2월 25일 아침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려 동행들과 만났다. 용산에서 아산 온양까지 가는 열차편은 새마을호로 예약했다고 S선생이 알려주었다. 나는 순간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1979년 2월 25일 오전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는 친구들과 남산에서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 부산까지 가는 새마을호 열차(침대칸)에 올랐던 것이다.
그날로부터 46년 후 2월 25일 같은 날 새마을호를 타다니. 그 동안 다른 종류의 열차는 타 본 일은 있으나 새마을호를 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스토리가 전개되다니 기이하기 까지 하다. “아내와 함께 새마을호를 타고 어디든 여행을 가면 어땠을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라고 후회한다. 다음에는 꼭 아내와 함께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해야지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