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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탄의 독립지사 심상각의 재조명-이기상

심상각 생애

국가보훈처 공훈록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으로, 3·1운동 때 파주군의 주동자로 활약하였고, 그 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파주군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여 군 전체가 봉기할 것을 계획하고,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습격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남파주(南坡州) 경찰 주재소가 있는 봉일천리(奉日川里)까지 시위행진하여 만세를 불렀다.

그 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약 10년간 활동하다가, 광복된 후 귀국하여 후진양성을 위한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파주독립운동사

-심상각(沈相恪, 1888~1963), 김포(金浦) 출생, 파주(坡州) 성장-

호는 우산(山), 현감 정택(定澤)의 아들로 본관은 청송 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3월 10일 파주지역에서도 임 명애

(林明愛) 등 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3 월 25일에도 구세군(救世軍)인 염규호(廉圭浩)가 김수덕(金守德), 김선명(金善明), 임명애, 김창실(金昌實) 등과 더불어 시위를 계획하여 3월 26일 와석면 일 대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만세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김웅권(金維權)등 과 함께 군내 월롱(月籠)ㆍ교하(交河)·아동(街洞)·조리(條理)면 등지의 시일 을 이용하여 군 전체가 봉기할 것을 모의하였다. 이에 따라 3월 27일 2천명의 시 위군중이 광탄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 였다. 

시위대는 조리면 봉일천리(本日川里) 장터로 행진하여 그 곳에 있던 1천여 시위군중과 합세하여 봉일천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였 다. 이러한 시위를 주동한 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상해농업전문학교여 적을 두고 신교육을 받으면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약 10년간의 임시정부 활동을 마감하고 국내에 돌아와서는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파주군 광탄면에 광탄보통학교(廣灘普通學校)를 설립하고 그 교장에 취임하여 후진 양성을 위한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으며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심상각 독립지사의 생애 기록 - 파주위키 참고

심상각 지사의 재조명

신산국민학교 부지 기증 분야

1.학교부지 기증 확인서(신산국교)

ssk학교부지기증.JPG

  • 발행 : 신산국민학교장  (직인 날인)
  • 일자 : 1988, 2. 22일

  • 심상각 실제 사망일 : 1954.11.9일 (호적 및 보훈처 1969.3.7일)

2.학교부지 기증 확인서(파주교육청)

ssk학교부지기증교육청분.JPG

  • 발행 : 파주교육장 (직인 날인)

  • 일자 : 1988.3.3일

심상각 지사의 독립운동을 인정한 정부는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에는 1919년 3월 27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에서 10년간 활동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후진양성을 위한 육영사업에 전념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은 심상각의 아들 심정택이 1988년부터 2년간 준비한 제출한 공적심사 내용을 요약했다. 이 중 육영사업은 광탄보통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고 학교 부지를 기증한 확인서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유공 공적심사 신청서에 첨부된 확인서는 1988.2.22일 신산국민학교 교장(1번 확인서)과 1988.3.3일 파주교육장(2번 확인서)이 발행했다.

'1번 확인서'에 따르면 광탄면 신산리 33-1번지외 5필지 토지 중 일부를 희사하였고, 이 사실은 심상각이 사망하고 지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당시 교장의 조사서를 참고했다고 기록했다. 심상각은 실제 1954.11.9일(공부상 1969.3.7일) 사망한 것으로 보아 장례식에 참석했던 교장은 34년 후  '1번 확인서'릏 작성할 때 증언한 것으로 보인다.

파주군교육청에서 발행한 '2번 확인서'는 신산국민학교 부지 12,662㎥ 중 일부를 기증한 것으로 기록하면서 해당 필지의 지번은 생략했다. 이는 '1번 확인서'를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번 확인서'에 기록된 "현재 신산국민학교 부지 12,662㎥ 중 일부를 기증"이라는 표현은 당시 신산국민학교 전체 필지와 면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심정택이 독립유공자로 신청할 당시에 부친 심상각이 기증한 토지 지번과 면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포괄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1번 확인서'에서 명시한 신산국민학교 부지 전체는 6개 필지이다. 2025년 현재 이 필지들은 광탄면 신산리 199번지로 통합됐다. 통합 이전의 필지는 파주시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으며 일제가 1918년에 마친 토지조사부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

파주시 공부자료를 확인하면 신산국민학교 부지 6필지에 대한 소유권이 1962년부터 1974년까지 파주군교육청 또는 파주군으로 이전됐다. 이중 5필지는 심상각이 아닌 오세남 등 다른 개인이 전소유자이고 신산리 33-1번지 1필지만 1961년 국가가 소유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신산국교 부지중  신산리 201-1번지 1필지는 일제가 조사한 토지조사부에 심상각과 심경섭이 공동 소유자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해당 토지를 신산국교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기증되기 전 마지막 소유자가 오세남이라는 것이 문제로 부각된다.

이 토지를 심상각이 공동소유의 토지를 기증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토지조사후 등기로 확정된 것과 1962년 오세남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과정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2025.3.25일]

신산국교 토지 소유자 현황(1988년 기준)

기증번지

면적(평)

조선총독부 토지조사부1918년 (국가기록원 자료-연번)

토지대장 소유자

소유자이전

33-1

임야 1,414

자료없음

국가(1961년)

파주군교육청(1965년)

198-1

전 680

자료없음

1961년: 윤덕원,우유두

파주군교육청(1965년)

200

답 210

김홍식(1913년)-82

조용환외12명(1964년)

파주교육청(1964년)

201-1

전 1,152

심상각+심경섭-84

오세남(1962년)

파주군교육청(1962년)

201-6

대 127

자료없음

우수호(1964년)

파주군(1965년)

204-1

대 656

자료없음

조용환외 12명(1962)

파주군교육청 (197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