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사면
칠면조 사면
-죄 지은 적이 없는데-
오늘 일간지를 보는데 “트럼프, 추수 감사절 칠면조 사면”이라는 기사가 조
그맣게 실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이틀 전인 25일 ‘고블’과
‘와들’을 사면했다고 했다. 칠면조 사면식은 매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이 칠면조를 식탁에 올리는 대신 생명을 구해주며 축하하는 행사라는
것이다. 덧붙여 사사건건 트럼프와 부딪친 악연으로 유명한 미국 민주당 소속
상·하원 의원인 척 슈머와 낸시 펠로시를 사면하는 칠면조에 각각 ‘척’과 ‘낸
시’로 부를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선 절대 사면하지 않을 것이라
는 걸 깨달았다고 정치적 발언도 했다.
칠면조는 북아메리카 들칠면조와 중앙아메리카 구슬칠면조 등이 있다. 가축
칠면조는 이 들칠면조를 가축화했다. 닭에 비해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독수리에
버금가게 큰 것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칠면조를 얼굴에서 목에 이르는 피부의
색이 일곱 가지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미국에서는 터키Turkey라 부른다.
그리스 동쪽에 있는 나라 터키와 같은 철자를 가지고 있다. 터키에서는 “뿔닭
‘이라고 하는 이 닭은 ’기니 파울‘로 서아프리카 지역의 기니에서 왔다. 이 뿔
닭을 터키 상인들이 영국인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신대륙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뿔닭과 비슷한 새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터키‘라고 부른 것이다. 엄밀히 따지
만 아메리카에 있는 칠면조와 뿔닭은 모양만 유사하지 같은 건 아니다. 뿔닭은
뿔닭과에, 칠면조는 꿩과에 속하는 다른 동물이다. 오리와 닭에 비유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칠면조가 터키로 명명되면서 나라 이름과 같아졌다. 그래서
터키는 2022년 6월 오스만어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의 튀르키예Türkiye라고
공식 변경했다. 튀르크는 본래 ‘용감하다’라는 의미로 오스만 제국에서 민족
명칭으로 쓰였는데, 난데없이 영어권에서 ’얼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경멸적 은
어로도 불리었으니 국가 명칭을 바꿀 만도 하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이런 저런 이유로 링컨 대통령 시절 11월 넷
째 주 목요일로 정했다. 그런데 이날 왜 칠면조를 먹기 시작했는지 확실치 않
다.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아메리카에 온 영국 청교도들이 이듬해 추수를
마치고 축제를 연 데서 유래했는데, 당시엔 칠면조를 먹은 흔적이 없다. 오리
나 거위, 옥수수 빵, 사슴고기를 먹었다는 기록만 있다. 아무튼 추수감사절이
면 칠면조를 먹기 시작했다. 축제에는 먹거리가 제일인데, 주위를 보니 칠면조
와 같은 여럿이 먹기에 양이 넉넉하고 맛있는 칠면조가 있으니 먹었을 것이다.
과거 우리네 추석에 마을에서는 으레 돼지 한두 마리쯤은 잡아서 나누어 먹었
지 않았나.
19세기 후반 어느 날부터 로드아일랜드의 칠면조 사육 농부가 대통령에게 칠
면조 고기를 선물하곤 했다. 이걸 1947년 트루먼 대통령 때, 정식적으로 ‘칠면
조 증정식’이 치러지면서 정례화한 것이다. 그 후 몇몇 대통령들은 증정된 칠
면조를 먹지 않고 살려주곤 했다. 그러면서 붙은 이름이 ‘칠면조 사면식’이다.
그러니까 ‘National Thanksgiving Turkey Presentation’에서 Turkey
Pardon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납득이 안 가는 게 있다. 영어의 ‘Pardon’을 한글로 번
역한 것이 ‘사면赦免’인데, 사전에는 ‘죄를 용서하고 형벌을 면제함.’이라고 쓰
여 있다. 사면하려면 애초부터 죄가 있어야 한다. 죄가 있어야 용서도 하고 형
벌도 면제해 주는 게 아닌가. 칠면조는 무의식적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다. 오
히려 맛있는 살을 제공하는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로 살아왔을 뿐이다.
불교에서는 방생放生 또는 방사放赦라는 행위가 있다. 이 뜻은 ‘사람에게 잡
힌 생물 즉, 물고기, 새, 짐승을 놓아주는 일 또는 잘못을 용서하여 놓아줌.’이
다. 그러한 선행?을 하는 걸 보면, 놓아주어야 할 짐승을 일부러 잡거나 타인
으로부터 구해와야 한다.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라는 작품에는 심하게 묘사되
어 있다. 타인은 고이 잠자는 새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아다가 판
다. 그걸 방사한다. 그 생물에게도 ‘잘못’과‘ 용서’라는 족쇄가 씌워졌다. 그들
은 잠자거나 헤엄친 죄밖에 없다. 얼떨결에 잡혀 온 것뿐이다.
칠면조를 사면하는 거나 새나 물고기 등을 방사하는 거나 경우는 좀 다르지
만 그게 그거다. 둘 다 무슨 대역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용서’, ‘사면’이라는
죄를 언도했다. 인간 누군가가 그들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냥 태어나
서 살다가 잡혀 온 죄밖에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반란 및 내
란죄를 저질러 중형을 받았지만, 선고 몇 년 후에 사면을 받아 방면한 일이 있
다. 적어도 이럴 때 ‘사면’이라는 단어를 쓰는 거다. 누가 사면해달라고 했나?
누가 방사해달라고 했나? 그거 하려면 잡아가지나 말지. 그 단어 대신 그냥
‘풀어준다거나 놔준다’라고만 해도 좀 낯 뜨거운 일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