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초등학교가 키운 9남매, 교육을 향한 한 아버지의 깊은 뜻
전윤수 편찬위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작은 마을 분수2리에서 출발한 한 가족의 이야기는 신산초등학교의 역사와 함께 오롯이 흐르고 있다. 바로 서상설·정기순 부부의 아홉 남매, 모두가 신산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가족의 이야기는 한 시대의 교육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서상설 어르신은 본래 파주목사를 지낸 8대조의 후손으로, 조상 대대로 광탄 지역에 뿌리를 두고 살아오셨다. 분수2리는 원래 용미초등학교를 다니는 학구에 속했지만, 서 어르신은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자녀들에게 제공하고자, 일부러 학구를 벗어나 9남매 모두를 신산초등학교에 보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교육에 대한 깊은 신념의 표현이었다.
그 시절, 사회 전반에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깔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상설·정기순 부부는 아들·딸을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사랑하며 키우셨다. 그 결과, 아홉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고, 신산초등학교를 통해 배움의 첫걸음을 함께 내딛었다.
첫째 서병숙(23회 졸업)은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겪은 세대이다. 당시 학교는 지금의 광탄중·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전쟁으로 건물이 불에 타 없어지며, 윤관장군 묘 인근에서 수업을 이어갔고, 그렇게 어렵게 초등교육을 마쳤다. 현재는 인천에 거주하며, 후손들에게도 당시의 치열한 학창 시절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둘째 서광자(28회, 구리 거주), 셋째 서광명(29회, 캐나다 토론토 거주), 넷째 서광주(32회, 서울 거주), 다섯째 서광옥(35회, 금촌 거주), 여섯째 서광구(37회, 구리 거주), 일곱째 서광식(38회, 광탄 신산1리 거주), 여덟째 서광철(42회, 광탄 신산2리 거주), 아홉째 서광재(45회, 파주 운정 거주)까지. 이들 아홉 남매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며 신산초등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다섯째 서광옥은 초등학교 시절 전교 어린이 회장을 역임했고, 주산 3단을 취득할 만큼 학문적 역량도 뛰어났다. 이후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 근무하며 긴 시간 사회에 기여하였다. 일곱째 서광식은 현재까지도 동창회 모임을 직접 주최하며 38회 졸업생들과의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집에서는 매년 50명 이상의 동창들이 모여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교류를 나눈다. 막내 서광제는 45회 동창회 회장을 맡아 동창들의 화합과 총동문회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광탄 지역사회 봉사와 발전에 힘쓰며, 여전히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발을 맞춰 나아가고 있다.
이 가족의 교육에 대한 헌신은 부모님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서상설 어르신은 교육 문제에 깊이 관여하셨던 인물로, 용미초등학교가 신설될 당시 부지 선정을 놓고 치열한 논의가 있었을 때에도 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교통 접근성과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용미2리 부지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투표 결과로 현재의 용미4리 부지가 선정되며 아쉬움을 남기셨다.
1993년 아버지 서상설 어르신이 별세하시고, 2007년 어머니 정기순 여사가 별세하셨을 때, 9남매는 뜻을 모아 고향 가정집에 빈소를 마련하고 전통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미 대부분이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던 시기였기에, 이 가족의 결정은 지역 사회에서도 큰 감동과 존경을 받았다.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깊은 사랑과 예의,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신산초등학교의 긴 역사 속에서 9남매가 모두 한 학교에서 배우고, 그 배움의 토대를 기반으로 각자의 삶을 일군 가족은 드물다. 그들은 단지 학교를 졸업한 동문이 아니라, 신산초등학교의 정신과 지역사회 교육의 의미를 대대로 실현해온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도 이 가족의 이야기, 그 중심에 선 교육에 대한 부모의 신념과 형제자매 간의 우애는 신산초등학교 100년사에 빛나는 기록으로 남아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큰 울림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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