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까치꽃' 의 이유
춘분이 내일 모레다. 한낮 창밖을 내다보니 눈부시고 따뜻한 느낌이다. 산책을 할까 하는데 S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릉천 길을 걷는데 역시 많은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탄다. 길가엔 새싹들이 파릇파릇하게 생기가 돋는다.
삼각산에서부터 길게 뻗어 내려오는 공릉천 물웅덩이에선 오리, 원앙들이 물속으로 곤두박질도 치며 물 위를 신나게 떠다니고 있다. 이따금씩 가무우치가 물 위에서 날갯짓을 하며 미끄럼을 탄다. 그 옆 백로와 왜가리는 우두커니 서서 이리저리 살피며 망본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그런 광경에 취해 가는데 어느새 둑방길로 올라섰다.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얼마쯤 가다보니 그이가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다리 건너 멀리 길가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 관찰을 하는 것 같다. 오리들의 노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는데 카톡으로 사진 두 장이 전송되어 왔다. 한 장면은 풀잎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꽃 10여송이가 흩어져 있고, 다른 한 장면은 그 꽃 한 송이를 확대하여 찍은 것이었다. 보라색 꽃이다.
초여름 장마철에 피는 연보라색 도라지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하지만 참 예뻤다. S가 어느새 쫓아왔다. 무슨 꽃이냐고 물었더니 ‘큰개불알꽃’이라고 한다. ‘봄까치꽃’이라고도 한단다. 나는 이름 한 번 고약하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식물들은 ‘며느리밑씻개’처럼 이름이 천박한 게 많다고 했더니 그이도 공감한다.
언젠가도 그런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문제에 대하여 몇 마디 주고받다가 끝냈다. 내가 그 방면에 아는 게 별로 없어서였다.
이튿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공릉천 자전거길을 달렸다. 어제 S가 한참 들여다보던 길가 그 모퉁이를 돌면서 큰개불알풀잎과 꽃들을 얼핏 스쳐 지나게 되었다. 잠시지만 꽃들은 하늘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별과 같은 잔상으로 남았다.
자전거에서 내려 그 자리로 와서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꽃이었다. 예전에는 이 풀잎과 꽃 이름도 몰랐지만 그렇게 작은 줄은 정말 몰랐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고 어떤지 아는 건데 관심도 없이 걸으면서 더군다나 자전거를 타고 획 지나간대서야 어찌 보일까. 자동차를 타고 가면 더 말할 것 없다.
지난달 아산 영인산자연휴양림을 찾으면서 길가 돌에 새겨진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고 읊기 쉬운 시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도 시인이 읊은 것처럼, S가 웅크리고 앉아 자세히 살핀 것처럼 흉내를 내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아도 자세히 보니까 예쁘다. 오래 보니까 사랑스럽다. 내 주위에 자세히 보아야 할 (?)들이 많지 않을까. 특히 사람이…
근데 ‘큰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은 안 되겠다. 이 꽃말이 ‘기쁜 소식’이라니 ‘봄까치꽃’이라고 불러야겠다. 우리만이라도. 봄까치꽃,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 2025. 3. 17 공릉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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