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새로 본 인사동

new-insadong.JPG

2025년 8월의 토론 도서는 인사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정숙 작가의 "새로 본 인사동'이다. 나는 파주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때 수원에서 학교 다닌 것 이외에는 파주에서만 살아 왔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을 다녀 오지만 따로 인사동을 방문한 기억은  없다. 최근의 일이지만 주변에 있는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북촌마을을 들러 본 적은 있다. 다시 말하면 인사동에 특별한 의미를 모르면서 살아 왔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인사동은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자리 잡은 곳이다. 1394년에 천도했으니 올해 2025년까지는 631년이 지났다. 옛 부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숫자적으로 지금의 서울은 60여회 이상 강산이 바뀐 것으로 계산된다.

조선의 역사와 해방 이후 역동기마다 달라진 결과의 모습이 지금의 서울이다. 지금의 인사동은 그 동안의 많은 변화에서도 가장 적게 변하고 조선시대의 틀을 잘 이어 왔기에 명소가 된 것이다.

과거의 색 다른 공간을 보고 느끼는 것도 볼거리이지만 면면이 이어온 스토리는 그곳의 풍경을 의미있게 볼  수 있게 한것다. 이 책의 제목과 달리 나는 '새로 보는 인사동'은 아니다.  '아직 보지 못한 인사동'이다. 앞으로 기회가 있어 인사동을 찾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한국 역사 중에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 강점기, 해방후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사를 들춰 볼려고 하지 않는다. 중국 대륙에서 빛 나던 고려의 기상과 이순신 장군이 보여 주는 지략과 겸손함을 더 기억한다.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객관적인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편견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정신을 갖으려고 굳이 인사동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어느정도 세상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었으니 언제인가는 인사동을 보게 될 것이다.

독후 통감 讀後統感

이 도서는 시작과 마지막 카테고리를 현장  사진으로 소개하고 나머지 6개 카테고리는 역사와 인물, 문화 중심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전체 내용은 공공기관에서 관광객에게 유적지나 역사인물, 명소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작가가 인사동이라 공간을 눈에 보이는데로 또 역사 교과서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공간에 대한 작가만의 고유한 주제가 보이지 않았다.  주마간산식의 서술로 보인다.

나는 인사동을 그냥 서울에 한 동네 인것처럼 살아 왔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 것은 다행이다. 문화를 지키는 것은 과거의 역사과정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 공간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파리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전투없이 나치 독일에 항복을 했던 역사는  그나라의 국민과 정치인이 문화의식이 고양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주마간산의 도서이지만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을 알차게 만들어 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고 그것이 문화의 힘이하고 볼 수 있다.  

토론 주제와 내 생각

1.내가 가 본 곳은?

아직 없다.

2.<새로 본 인사동>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인물이나 장소는 어디가 있을까요?

현재 남은 것은 없지만 우정총국 앞에 있었다는 도화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명 작가가 2007년에 발간한  '바람의 화원'이라는 추리 소설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이다.  

이 책은 2008년 9월에 북티즌에서 토론을 했다. 소설은 천재 화원 김홍도가 있는 도화서에 신윤복이 제자로 들어 오고 신윤복이 천재성을 발휘하는 스토리이다.  신윤복은 형식적이고 개성이 없는 도화서에서 나가게 되고 이산 정조가 명했던 사건에 대하여 김홍도와 풀어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 했던 기억이다.

2004년부터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됐다.사진을 잘 찍기 위해 미술관을 다니면서 그림을 좋아하게 됐다. 그림은 늘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이유로 구도와 색상, 표정을 그리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한다. 

3.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인사동은 친일과 항일이 공존했던 곳인데요. 독립운동가 중 파주의 인물에 대해서 각자 한 명만 소개해 볼까요?

광탄에는 3·1운동 때 파주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활약하였고, 그 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한 심상각 독립지사가 있다.  그 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10년 활동하다가 광복후 귀국하여 육영사업에 전념했다.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파주의 또 따른 6분은  1919년 3월27일 조리면사무소와 봉일천헌병주재소에서 시위를 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망자 6분 중 3분은 광탄 시내 주민이고  3분은 발랑리 주민이다, 이와함께 당일 체포 된 9명은 모두 발랑리 주민이다. 발랑리 지역에서는 만세운동을 발랑리 주민이 주도했다고 하지만 대부분  기록에는 심상각으로 나타난다.

심상각은 1969.4,7일 호적상 사망일이고 비석에는 1954.11.9일로 기록됐다. 심상각 아들 심정택은 1988년부터 공적조서를 준비하여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공적조서에 첨부된 사본을 중심으로 보면 1926년에 신산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는데  1919년 중국 망명후 1934년 4월에 귀국하여 사립보통학교를 설립했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삼성걱아 신산국민학교 부지를 기증했다는 내용은 일제가 만든 토지조사부나 등기와 학교 기증 문서를 분석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1937년 10월15일에 심상각 명의로 현재의 파주읍에 양조장인 봉루주조를 설립했다. 이 당시 가양주 제조가 금지되어 양조장 허가는 쉽지 않은 시기이다. 

심상각은 만세운동 후에  중국으로 망명하고 15년 정도 지나서 귀국했다, 그렇지만 귀국 후에 일제의 감시하에도 사회활동에 제한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있는 자의 증언과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