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북티즌에서 토론 주재는 1년에 한 번쯤 맡게 된다. 나는 작년 12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토론 도서로 선정했었다. 하지만 2025년 토론을 위해 책을 읽어보니 450쪽이 넘는 분량과 철학적인 깊이가 부담스러워 결국 다른 책을 찾아야 했다.
다시 토론 도서를 찾던 중, 우연히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출판사 소개를 읽어보니 평소 내가 관심 있던 분야의 이야기였다. 작년 11월에 토론했던 김훈의 『허송세월』처럼,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삶』이 다음 토론 도서로 정해졌다. 토론을 준비하면서도 김영하 작가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 줄은 미처 몰랐다. 2020년에 그의 소설 『검은 꽃』을 주재하고 『여행의 이유』로 토론한 적이 있었지만, 그저 탄탄한 중견 작가 정도로만 여겼다.
작년 11월 『허송세월』 토론 때, 나는 주재자가 아니었음에도 박경리와 김훈 두 작가의 말년을 따로 정리해서 발표했다. 두 작가 모두 인생의 끝자락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쓴 글이기에, 굴곡진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68년생인 김영하 작가가 50대에 이 책을 썼다는 점에서 박경리나 김훈의 회고록과는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굳이 말하자면, 『단 한 번의 삶』은 김영하 작가의 ‘중간 회고록’이라 불러도 좋겠다.
이번 토론은 모처럼 특별한 곳에서 열렸다. 교하에 있는 ‘파라프라’ 캠핑장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며 편안하게 시작했다. 캠핑장 주변은 서서히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이용객 없는 텅 빈 수영장은 소란스러웠던 한여름의 풍경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한다.
독후통감
북티즌 회원들은 이번 토론을 통해 김영하 작가를 독특한 인물로 바라보았다. 그는 우리와 다른 젊은 세대이면서 작가로서 크게 성공했고, 비즈니스 감각까지 탁월한 데다 세상을 냉철하게 분석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책이 작가 자신의 인생을 다룬 글인 만큼, 토론 역시 회원 각자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진행했다.
특히 '내 인생의 의미를 색깔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주제에서는 다채로운 의견이 나왔다.
한 회원은 자신의 삶을 베이지색, 밝은 회색, 감색에 비유했다. 찬란했던 시절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담은 색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로즈골드와 녹색 계열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흰색과 검은색이 더해진 무지개색을 꼽은 회원도 있었다. 인생의 어두운 굴곡과 환한 시절이 뒤섞인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케르메스(Kermes)라는 붉은색을 언급한 회원은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연지벌레의 빨간색처럼 깊은 매력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그를 미스터리한 느낌의 연보라색 같다고 본다는 말도 전했다.
바이올렛을 선택한 회원은 이 색이 귀족적이면서도 우울하고, 동시에 희망을 품은 복합적인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유록색을 고른 회원은 초봄의 나뭇잎처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철학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빨간색을 선택한 회원은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삶 속에서도 뜨거운 정열과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색의 의미는 성장 배경이나 사회·문화적 경험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확인하며, 자신을 상징하는 색을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어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5가지' 토론에서 한 회원은 사자성어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꼽았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회원들은 "가족, 행복, 감사, 그리움", "균형, 깨달음, 레오(고양이 이름), 관대함, 즐기자" 와 같은 단어들을 나누며 각자의 가치관을 공유했다.
토론 주제 및 나의 생각
1.학창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학생 시절에는 여러 가지 기억이 있다. 그 중에 초등학교 시절을 평범한 성적으로 보냈지만, 중학교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성적이 크게 오른 것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학교 근처에서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선생님과 사모님을 자주 뵐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는 주변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은 국어 선생님이셨고, 2학년 때 내가 좋아했던 분은 미술 선생님이셨다. 두 분 모두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지금도 그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여전히 글쓰기와 사진에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은 아마 그때의 소중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토론의 여지가 없었던 너무나 정형화된 질문으로 생각했다. 다만 김영하 작가가 책 첫번째에 본인의 어머니를 이야기 했기 때문에 선정하게 됐다.
우리 어머니는 20대부터 80대까지 장사로 살아 오셨지만 큰 돈을 벌지 못했다. 빚을 지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땅을 사거나 가게를 늘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이북에서 피난와 조그만한 가게터를 마련하여 우리 3형제를 키웠다. 학교 다닐때 장사를 해서 어렵지 않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부모가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남기는 것이 있다고 본다.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스스로 낚시 바늘을 꿰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생활 태도가 진정한 재산일 것이다.
3.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 5개 고르기
나는 평상시 살아 가면서 주로 떠 올리거나 말하는 단어들이 있다. 공직을 퇴직하고서는 '인생 뭐있어'를 가장 많이 말하고 있다.
'인생 뭐있어'에 녹여 있는 단어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소신, 죽음, 고독, 휴머니즘, 팀워크"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한다.
'소신' 은 그동안 내가 살아 오면서 지켜온 가치이고 '죽음'은 '소신'을 지키면서 살도록하는 동기 부여의 단어이다. 고독은 석가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글을 어려서 알게 되었고 지금도 가슴에 시리게 다가 온다. 인간의 시원적인 고통이라는 고독에 대한 대표적인 비유로 '내가 아프다고 대신해서 아파 줄 수 없다'는 말이 기억된다.
고독하기 때문에 이웃과 따듯하게 지내야한다는 휴머니즘의 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을 지키기 위해 현실적인 삶의 방법으로 '팀워크'를 실천할 수 밖에 없었다. 휴머니즘은 같이 생존해야 한다는 것으로 지구 밖으로 달아 날 수 없어 현실적인 '팀워크'가 대안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4.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의미를 색깔로 표현 한다면
내 인생의 의미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연두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 친구네 집 앞마당에 열렸던 청포도가 나의 색감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 기억 때문인지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별한 추억도 만들었다. 청포도가 열리던 집의 친구와 또 다른 죽마고우, 이렇게 우리 셋이 모여 '청포도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각자 노트에 친구가 쓴 글을 옮겨 적는 방식이었는데, 아쉽게도 군 제대 무렵에 중단되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청포도 빛깔인 연두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었다. 연두색은 생명력, 신선함, 젊음, 활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마 지금 내 마음의 색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덧붙여 내가 운영하는 사이트 로고의 테두리는 주황색이다. 밝고 따뜻한 느낌이 좋아서 선택한 색이다.
5.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 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품기는 범죄,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 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 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책 날개 본문]
위 내용은 "테세우스의 배"에서 나온 이야기로 보인다. 배의 물리적 요소가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테세우스의 배로 불리는 철학적인 논제이다. 지금의 내가 타인에게 각인된 모습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과 타인이 보는 모습의 차이가 적을 수록 좋은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