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동패동 언덕에는 회화나무가 사백오 십 년째 산다.
아득히 멀고도 가까운 수많은 이야기를 품어
높다랗고 우람한 모습 앞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6월의 핏빛 바람 자국
작은 잎사귀 옆옆이 세우며
사운거리는 입술엔 심학산 자락이
살짝 엿듣고
그랬노라 찬찬히 더듬는
하늘이 둘로 쪼개진 그 날의 기억
횃대에서 소리친 닭 울음소리에 묻혀버린
아버지와 삼촌의 넋두리
촘촘한 잎맥 그물 사이로
붉은 끈으로 묶인 사람들 이야기를
검은 먹과 붓질로
잠시도 쉬지 않고 옹이에 박나보다
가지마다 하얀 꽃잎을 폴폴 풀어내고
겹겹이 쌓인 아픔을 벌겋게 달굼질 하니
숲가에 잇닿은 어둑한 무게에 눌려
우듬지 하나 툭 떨어져 나간다.
때론 실개천처럼 눕고 싶었을
까무룩 지우고 싶은 마음 곤두서지만
추슬러 질곡의 소용돌이에 초록을 담가
닿소리 홀소리로 낱낱이 새긴 그 기록
나이테에 감은 채
화해의 오롯한 새길을
초연히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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