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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속 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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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속에 심양

세월이 흘러 호란을 겪은 후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어느 날 연암 박지원이 공식적으로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쓴 열하일기에 심양을 거친다.

정조 4(1780),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칠순을 맞이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를 축하하기 위한 사행단을 보냈는데, 이때 정사正使 박명원의 팔촌동생 박지원이 이 대열에 합류, 4개월간 청나라를 다녀온 후 열하일기를 남겼다. 원래 사행단은 황제가 있는 지금의 북경인 연경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당시 건륭제는 피서차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사행단도 연경 북동쪽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인 열하까지 육백여리나 더 가야했다.

열하일기는 크게 일곱 파트다. 1부 압록강을 건너서 요양까지 가는 길, 2부 심양을 지나는 길, 3부 산해관으로 가는 길, 4부 산해관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 5부 북경에서 열하로 가는 길, 6부 열하에서 건륭제를 알현, 7부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사행단 여정도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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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심양은 북경으로 수도를 이전하기까지의 수도였으므로 모든 것이 황제가 있는 수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암도 호기심이 나서 밤에는 나가 놀았던 모양이다. 열하일기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711일자 일화다. “전날 밤에 연암은 비단가게인 가상루, 골동품 가게인 예속재를 돌아다니며 청나라 사람들과 날이 밝도록 놀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에 또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어의 변계함이 연암을 따라 같이 밤 구경을 나가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변계함은 허락을 구하고자 수역(수석 통역관) 홍명복에게 물어보는데 이에 수역이 펄펄 뛰며 이렇게 말했다. ‘심양은 황성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밤출입이란 당치 않은 말씀이오!’ 이 말을 들은 연암은 마두 장복이에게 혹시 누가 나를 찾거든 뒷간에 갔다고 해라.’라고 일러두고는 수역 몰래 혼자 빠져나와 밤 구경을 즐겼다.

또 이런 내용도 적혀있다. “이날 사행단은 고려보高麗堡에 도착했다. 고려보는 병자호란 때 조선에서 청으로 붙들려간 사람들의 집단 정착 마을이다. 예전에는 조선의 사신이 이곳에 오면 고려보 사람들이 반가워하며 더러는 술값, 밥값도 받지 않았다. 또 고국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행단에 속한 말꾼과 하인들이 이런 틈을 노려 술값을 떼어먹거나 그릇 같은 것을 억지로 가져가고 물건을 훔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고려보 사람들은 사행단을 점차 싫어하게 되었으며 이후 사신 행차가 올 때 일부러 술과 음식을 감추고 팔지 않거나 팔더라도 비싼 값을 불러 팔았다. 이에 화가 난 하인들은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너네들은 조선 사람의 자손이면서 어찌 너희들 할아버지가 오시는데 나와 절도 하지 않느냐고 소리치며 욕을 했다. 고려보 사람들도 이 소리를 듣고는 나와서 하인들에게 똑같이 마주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같은 동포임에도 서로가 원수지간이 된 모습을 연암은 한심하게 여겼다.” 수백 년이 지났어도 참 낯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의 심양, 서탑가 코리아 타운

차창 밖은 이제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보인다. 잘 다듬어진 너른 만주벌판을 보면서 안내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아마 심양인가 보다. 인구 천백만 도시라니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들쭉날쭉한 빌딩이 여기저기 보이고 수많은 차들이 교통 혼잡을 이루는 번화한 도시에 도착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한국 사람이 왔으니 한국과 인연이 있는 식당으로 안내한다. 마침 우리가 가는 식당 앞에 평양관이라는 식당이 보이고 입구에 한복을 입은 젊은 아가씨가 안내를 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우리를 보자마자 식당 안으로 황급히 피한다. 왜인가 했더니 남한 사람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남조선 사람들의 태도가 그들의 심기를 많이 건드린 것이다. 그 식당은 북조선 사람이 운영하는 국영식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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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이 운영하는 평양관 전경

점심을 한 후에 우리는 조선족이 많이 산다고 하는 서탑가와 그 시장을 가기로 했다. 대신 너무 복잡하여 짧은 시간에 들려야 하니 물건을 사거나 사진을 찍느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주의를 준다. 나는 그래도 시장이 형성된 일반적인 거리를 한 컷 찍기는 했는데 기시감이 들었다. 심양의 코리아 타운이니 과거 우리네 전통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 있다. 한국은 지금 이런 시장 모습이 거의 없다. 언제부턴가 전통시장을 현대화한다고 전국이 똑같아졌으니 옛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좀 허름한 것 같으면서도 조선인만 느끼는 그런 모습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기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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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의 코리아타운인 서탑가 시장

심양 서탑가, 코리아타운은 중국 동북 지역의 대표적인 한인 밀집 지역으로 그 형성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 가난과 억압을 피해 만주로 이주해 온 조선인들이 심양의 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서탑은 구시가지와 가깝고 저렴한 주거 환경 때문에 한인들은 이곳에 교회와 학교 등 공동체 기반 시설을 만들며 정착했다. 이는 서탑 코리아타운의 역사적 뿌리가 된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1992년 한중 수교는 서탑가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과 함께 한국 주재원 및 조선족 동포들이 심양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서탑가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국 식당, 슈퍼마켓, 미용실 등 한국 관련 상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한국 거리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서탑가는 단순히 한인들의 거주지를 넘어, 한국과 중국 문화가 공존하는 이중문화의 장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한국 전통 명절 행사와 함께 한국어 간판, 한국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조선 동포들의 고유한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이제 서탑가는 심양의 중요한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여, 중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도 있지만, 서탑가는 깊은 역사와 독특한 문화적 매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