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찾아 - 신산초 32회 유인수
1949년에 태어난 나는 2남 2녀 중 장남으로 자랐다. 아버지는 600평의 작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큰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낮에는 품앗이로 남의 농사일을 하고 달밤에는 우리 땅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나는 휘영청 달 밝은 밤이면 아버님 따라 나가 수수를 꺾는 작업을 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창만리에서 신산국민학교까지는 약 2킬로미터의 거리였다. 중간에 마을도 없는 길을 걸어 다녔는데, 밤이면 무서움을 참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에는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다녔다.
학교는 남학생은 1반, 여학생은 2반으로 나누어 있었다. 1반 담임은 마장리가 고향인 이달호 선생님이었고, 2반 담임은 황삼복 선생님이었다. 추억의 스토리를 쓰면서 1962년 졸업 앨범을 보고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학교 가는 길 중간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먹을 것이 없던 시대이어서 옥수수대나 소나무 속껍질, 칡뿌리를 즐겨 먹던 시절이었다. 방과 후에 집에 오는 길에는 미군부대 쓰레기장에 들러서 쓰레기 사이에 있는 음식물을 찾아 먹었다. 그때는 그 음식들을 '꿀꿀이'라고 했는데 운이 좋으면 햄이나 갈비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의 꿀꿀이가 지금은 부대찌개로 바뀌어 한국의 음식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시절이라 미국에서 원조 물품으로 들어온 우유를 나누어 주었다. 학교에서 우유를 아껴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가져가서 도시락에 넣고 물을 넣어 쪄서 먹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생들이 현재 오산리 기도원 근처에 있던 사사부대로 가서 헬기를 타고 온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았다. 신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창만리 교회에 나가서 푸짐한 선물을 받은 기억도 있다.
겨울 방학 전까지 학교에는 난로를 피웠다. 난로에 들어가는 나무 장작은 학생들이 하나씩 들고 등교해서 불을 피웠다. 그 난로에 도시락을 겹겹이 쌓아서 데운 후 점심시간에 먹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 소풍은 항상 소령원이었고, 운동회 때는 학교에서 미륵불까지를 마라톤 코스로 정해 매년 경기를 했다. 우리 동네 개울가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 야구를 많이 했다. 미군들이 신산초등학교에 야구 연습을 하러 와서 야구공이나 장비를 놓고 가는 경우가 있어 동네에서 야구를 할 수 있었다.
우리 동네 마을 앞에는 여울이 넓은 문산천이 있어 가끔 동네 선후배들과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해 먹었다. 야간에 횃불을 들고 다니면서 나무 자르는 톱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톱은 얇아서 물에 저항이 적어 물속 깊이까지 잘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해 먹을 때는 각자 집에서 고추장이나 호박, 감자, 소금과 양념을 가져왔다. 그 당시에는 이를 '천렵'이라고 불렀다.
4학년 때는 심명택 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숙제 검사를 자주 했다.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한 사람은 양심적으로 손을 들라고 하고 불러내서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렸다. 나는 숙제를 안 해 갔지만 겁이 나서 손을 들지 않아 맞지 않았다. 심명택 선생님은 훗날 고양시 국회의원이 된 심상정의 아버지였다.
그 당시 양심불량했던 기억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아마 그런 기억이 오늘날까지 나를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선생님의 회초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때 6년간 딱 하루 결석으로 개근상을 타지 못하고 정근상을 탔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이다. 우리집 앞에 있는 창만리 삼거리부터 두만리까지 길은 리어커 정도만 다니는 좁은 길이었다.
그 길을 확장하기 위해 동네 토지주들이 땅을 희사해 새마을 사업으로 도로를 포장했다. 준공식 날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장이 식순 중에 혁명공약 낭독을 나에게 맡겼다. 혁명공약을 열심히 외워서 행사에 참석했다. 준공식에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고 이장이 학교출석을 공가로 처리해 준다고 약속했지만 결석으로 처리되어 정근상을 받게 된 것이다.
신산국민학교 32회로 졸업한 나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지만 이런 추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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