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 향기가 가득했던 그 시절 -42회 이영희
추억은 아려도 아름답고
그리움은 괴로워도 행복하다고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 새삼 떠오릅니다.
낼모레면 어언 나이 70을 바라보니
이젠 초등학교 시절의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점점 희미해 짐에
가슴은 철렁해지고
눈시울은 뜨거워지기만 합니다.
조각조각 흩어진 추억들의 잔재가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는
지금 교무실동이 있는 곳 복도에는
외부와 차단되는 담이나 창문이 없는
기둥으로만 되어있었습니다.
그때는
오전반과 오후반이 있어
한주는 오전반, 다시 또 한주는 오후반으로
다니면서 공부한 적이 있지요.
당시 저는 조리면 오산리에 살았지만
아버지가 그래도 조리면 덕암초등학교보다는
좀 더 큰물인 광탄에 신산 초등학교를 다니라고 해서
어떤 때는 걸어서도 다니고
또 어떤 때는 지금의 오백원 은색동전만 한 크기의
5원을 내고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걸어 다닐 때는 지금은 없어진 미군부대( 그 당시 사사부대) 뒷길
논두렁을 걸어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봄이면 무꽃이 노랗게 피어서
나비들이 많이 날아들었는데
하루는 노랑나비 한 마리가 꿀 따는 것보다는
학교 가는 저랑 놀고 싶다고 얼마나 보채던지...
그만, 어린 나이에 그 유혹에 넘어가
학교를 땡땡이 친 날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절에
그런 땡땡이 칠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영화처럼 아름다운 영상 속의
주인공이었던 저를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개근상의 의미가 없겠지만
6년 개근에 그날 하루 빠진 정근상을
졸업식날에 학년대표로 나가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우등상도 아니고 정근상대표가
왜 그리도 부끄러웠던지...
그렇잖아도 아주 내성적인 내가
상 받으러 나간 단상에서 고개도 한번 못 들고
그냥 상만 받고 내려온 기억이
몽실몽실 피어올라 입꼬리가 실실 올라갑니다.
봄가을로 가는 소풍날은 또 어땠게요?
소풍 며칠 전부터 잠 못 이루며
제발 비야 오지 말아라...
하느님 비 오지 말게 해 주세요....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자기도 했었는데
해님 방긋 웃어주던 소령원 소풍날엔
차 한 대만 지나면 먼지가 연기처럼 폴폴 날리고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줄지어 있는
신작로를 따라 마장리 고개를 넘어
먼지구댕이 속으로 걸으면서도
그저 좋다고 하하 호호 친구들과 함께 웃던
그날이 최고의 날로 행복했던 일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리 먼 길을
힘들다는 생각이 단 1도 없이
그리 잘 걸어서 다녀왔는지
참으로 신통방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또
월요일마다 하는 조회시간!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함께 목청껏
불렀던 애국가와 교가의 제창!
특히 교가를 부를 때는 애국가보다 훨씬
가슴이 벅차오르는 학교사랑의 애교심을
담뿍 담아 부른 적이 많기도 했지요.
지금도 교가를 입속에서 웅얼거리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팔십 리 수도 서울 등에 지고서 ♪
푸른 산 맑은 내를 가슴에 안고 ~♬
아름다운 우리 고장 향기 마시며 ♪
몸과 마음 닦고 가는 우리의 신산 ~♬
그때 함께 입모아 부르던 친구들 중에는
벌써 하늘에 별이 된 친구들도 있어서
가슴이 메어져 오기도 하네요.
노트 수십 쪽을 쓰고도 남을
많은 추억들은 내 친구들 추억과 동일함에
많은 공감을 할 것 같습니다.
그 원초적 추억의 화수분이고
내 인격을 형성해 주었던
유년시절의 추억 되새김은
세월이 이렇게 흘러도 내 가슴에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따듯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러 잊지 못할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나의 모교 신산초등학교가
벌써 100주년이 된다 하니
너무나 자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학교의 모습을 볼 때면
자긍심도 생기고 저절로 가슴이 쫙 펴지고
어깨가 으쓱으쓱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는 신산이 되길 바라면서
많은 후배들에게도 꿈과 희망의 학교
자랑스럽게 빛나는 신산이 되길
진심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영원하라 신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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